- Overview
-
절대로 이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자들이 휘황한 욕망 아래 숨겨진 혐오의 실체를 발견한다!
- Book Intro
-
증과 악취 때문에 고생하는 건설회사 직원 이슬. 생리통이 심할 땐 자궁을 뜯어내 반으로 갈라 햇볕에 산뜻하게 말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걱정해주는 남자 친구에게도 창피하고 우울한 마음이 들어 슬은 어느 날 질정제를 주문하고 출근 전부터 찬 바닥에 누워 약을 넣는다. 그날은 1935년 일제 강점기에 설계된 서울의 유명 백화점 건물 보수 문제로 중요한 미팅이 있다. 슬이 맡은 일은 공교롭게도 이 백화점의 악취를 잡는 것. 주얼리와 백이 전시된 1층 부티크 매장 아래에서 익숙한 악취가 올라오고, 슬은 바닥을 뜯어보기 전 1935년에 작성된 건축 문서를 빼돌려 살피기 시작한다. 부서질 듯 낡은 문서에는 역시나 악취에 대한 보고가 들어 있다. 그리고 바닥 아래 무언가를 보고 실성한 사람들에 대한 짧은 기록과 수수께끼 같은 말 “빈오재”가 반복되는데.
자궁을 꺼내 뽀송하게 말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건물 공사라면 다르다. 슬은 어딘가 자신의 문제와 비슷한 이 건물을 파헤쳐보고 싶다. 그곳의 지상에선 휘황한 조명 아래 하루를 견뎌가는 노동자들의 눈물을 마주하고, 지하에선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노인을 맞닥뜨린다. 새세계 백화점의 지하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왜 이 비밀과 오래된 공포는 슬에게 열리는 것일까?
이 작품은 휘황찬란한 자본의 정점, 한국의 백화점을 무대로 러브크래프트의 공포와 혐오를 다시 쓴 소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공포 중 상당수가 혐오하는 자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이 소설의 공포는 혐오당하는 자로부터 시작된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초월적 존재라면, 오늘날 ‘낮은 곳에’ 임한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는 자본과 혐오일 것이다. 작가는 백화점 쇼윈도 아래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협력업체 노동자들, 혐오 표현에 상처 입은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로부터 크툴루를 본다. 자본의 욕망이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화려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힘없는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은 가장 ‘혐오스러운’ 형식으로 크툴루가 되어 공포를 되돌려준다. 오늘날 한없이 낮은 위치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하여,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혐오 표현에 대하여 거리낄 것 없이 날것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던지는 호러소설.
- About the Author
-
이서영
SF와 판타지를 쓴다.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는 SF를 발표해왔고, 소설 외에도 노동과 젠더가 밀접하게 뒤얽히는 지점들을 파고드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도시 빈민의 삶을 짊어지고 이십대 내내 시위를 하다 보니 빈곤과 노동에 심하게 집착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주로 과학소설을 쓰지만 무슨 글을 써도 빈곤의 그늘을 떨치지 못해서 서글픈 사람.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필명 앤윈으로 「종의 기원」과 「성문 너머 코끼리를」 게재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악어의 맛』을 펴냈고 『아직은 끝이 아니야』 『이웃집 슈퍼히어로』 『여성 작가 SF 단편집』 등의 앤솔로지에 참여했다. 2020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수상작가. (2021. 온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