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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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은 정말 쓰기만 하는 물건일까? 지우개와 종이가 펼치는 엉뚱한 세상을 보여준다.
- Book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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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일까, 공책일까?
이 그림책은 그림책이 아닙니다. 보통 그림책 표지에는 제목이 있고, 지은이 이름이 있고, 펴낸 곳이 적혀 있는데, 이 책의 표지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으니 그냥 공책입니다.
이 물건을 들어 꼼꼼히 살펴봅니다. 공책이 아니라 책입니다. 제목과 지은이와 펴낸 곳은 책등에도 있고, 책 속에도 있으니 책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책장을 넘겨 보면 그림과 글자도 있습니다. 그림책입니다.
그럼 이제 이 책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지 책장을 펼쳐볼까요?
첫 장 왼쪽에는 물고기가 된 지우개가 있고, ‘닭’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오른쪽은 표지에서 본 까만 낙서 장면입니다. 숨은그림찾기 책인가 하고 열심히 찾아봅니다. 닭닭닭닭……. 어디 있을까, 닭……. ‘월리를 찾아라’처럼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포기하고 다음 장을 넘깁니다.
뱀. 누군가가 닭이라는 글자는 쓱쓱 문질러 지우고 그 옆에 ‘뱀’이라는 글자를 썼습니다. 오른쪽에는 지우개 물고기가 한 줄을 긋고 헤엄칩니다. 그 자리가 뱀 같기도 하지만, 글쎄요…….
책장을 더 넘겨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은 글자가 지워지고, 오른쪽은 그려지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숨은그림찾기 책인지, 그림으로 푸는 수수께끼 책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오세나 작가는 알 듯 말 듯 한 말을 합니다.
“하늘의 달이 스스로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는 것처럼, 나도 자연처럼 살고 싶다.”
달은 날마다 모습을 바꿉니다. 지우개도 지울 때마다 모습이 달라지지요. 연필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니까 어떤 한 가지 사물에는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말을 하려는 뜻은 아닐까요?
- About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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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나
저의 시선은 늘 작고 사소한 곳에 머물러요. 저는 그 시선에 삶의 철학을 담아 이야기를 짓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작고 사소한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그 안에 우리가 사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예요. 『빙산』과 『검정토끼』로 2020년과 2022년에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으며 2023년에는 『테트릭스』로 나미콩쿠르 그린아일랜드상을 수상했습니다.